0371 三國史記 百濟
冬 王與太子帥精兵三萬 侵髙句麗 攻平壤城 麗王斯由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왕이 태자와 정예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평양성을 공격하니 고구려 왕 사유가 힘껏 싸우며 막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고려는 도읍을 다시 국내성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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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69.09 三國史記 百濟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이끌고 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이 태자를 보내니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서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을 잡았는데 사로잡은 포로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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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갑 인하
475년 한성이 함락된 이후 한수 이북에서 벌어진 백제의 활동을 1주갑 앞당긴다. ┆495 雉壤┆501 水谷┆503 馬首 髙木┆506 高木┆507 髙木 長嶺┆523 浿水┆529 穴城 五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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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0316 晉率善穢伯長
▐ 穢와 신라의 경계가 원래 영일만 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를 자주 침공한 낙랑은 이 穢일지 모른다. 한나라의 낙랑군에서는 일찌기 빠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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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1~0368 ❷ 三韓의 再編
三韓²┆百濟+新羅+任那┆韓國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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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4 ◾閼川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서라벌에 이르려면 閼川을 따라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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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阿利那禮河·閼川
▐ 阿利那禮河가 阿利川이라 불릴 만했고 娥利英井이 閼英井이라고도 했다면 阿利那禮河 또한 閼川이라 불릴 만하다. 낙동강 물길에서 금호강을 따라 올라온 뒤 다시 대천을 따라 내려가면 형산강과 만난다. 이곳에 阿利나루가 있었고 그 앞을 흐르는 형산강을 阿利那禮河 또는 閼川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신라의 시조 설화가 얽혀 있는 蘿井이 있는 곳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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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東韓
양평에서 충주에 이르는 남한강 주변과 산지에 의해 금강 유역에서 분리된 진천 분지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여 東韓으로 인식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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